선교사이야기 김예성 목사
땡땡땡~♬ 친구들도 겨울이 되면 들려오는 종소리와 거리 곳곳에 놓인 빨간 냄비를 기억하지요? 기독교의 한 종파인 구세군에서 이웃을 돕기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 자선냄비는 마치 성탄절의 신호탄 같아요. 1865년 영국에서 시작된 구세군은 1908년 한국에 선교를 시작했고, 1928년 최초의 자선냄비 운동을 시작했어요. 일제 강점기, 절대적 약자였던 한국인을 섬긴 수많은 구세군 중에서도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린 메리 위더슨 선교사님을 만나 볼까요?
한국을 사랑한 구세군
구세군은 ‘이웃을 사랑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설립된 기독교 종파예요.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이름처럼, 목사님과 성도를 군대식 호칭으로 부르는 등 낯선 면도 있지만, 이는 이웃을 보다 잘 돕기 위해 군대의 효율적인 면을 가져왔을 뿐 실제 군대는 아니랍니다.
1907년, 구세군 설립자인 윌리엄 부스는 일본을 방문했다가 한국인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한국에도 선교사를 보내기로 약속한 부스는 이듬해 호가드 대령 부부를 한국에 파송했어요. 호가드 대령은 서울 서대문에 사무실을 차리고 구세군사관학교와 예배당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일본은 당연히 구세군을 좋은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일본인을 단장으로 세우는 등 구세군을 탄압했어요. 하지만 구세군은 이에 굴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 정신을 잘 이어 오고 있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라!″
1894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메리 위더슨은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실한 소녀였어요. 메리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구세군 집회에 참여했고, 그 자리에서 헌신된 구세군으로 평생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메리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어요. 많은 젊은이가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향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메리를 부르셨어요. “너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라!” 가족과 남아프리카에 살던 메리는 부르심에 순종해 요하네스버그의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해 부교가 되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파송될 예정이던 크리스 정위를 만나 결혼했고, 남편보다 1년 늦게 한국 땅을 밟았어요.
부부는 서울 근교에 고아원을 짓고, 7년 동안 고아들과 동고동락했어요. 그리고 자신들의 아들도 고아들과 다름없이 먹이고 입히며 교육시켰어요. 하지만 당시는 위생 상태도 나빴고,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아 어린아이일수록 전염병에 걸리기 쉬웠어요. 메리 선교사님 부부도 결국 발진 티푸스에 걸려 심하게 앓아눕고 말았어요. 그래도 메리와 크리스 선교사님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지만, 본부의 명령에 따라 케냐로 옮겨 가게 되었어요.
순종으로 실천한 고귀한 사랑
1950년 여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어요. 북쪽 공산주의 정권이 한국을 침략한 거예요. 북한군은 전쟁 초기 파죽지세의 기세로 밀고 내려왔고, 수백만 국민은 난데없이 죽음과 굶주림, 질병이라는 절벽 앞에 내몰렸어요.
이때 케냐에서 지내던 메리와 크리스 선교사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내가 만일 힘든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어찌하겠느냐? 내가 만일 한국으로 가라 하면 어찌하겠느냐?” 이들은 이번에도 말씀에 순종해 전쟁의 고통에 신음하던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한국에는 부모를 잃은 고아가 넘쳤어요. 메리 선교사님은 고아원을 세워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았어요. 메리 선교사님은 밤낮없이 사역한 끝에 위암에 걸리고 말았지만 여전히 성탄절이면 자선냄비 앞에 섰고, 거리에서 전도했어요. 그리고 1956년, 하나님께 돌아갔어요.
크리스 선교사님은 메리 선교사님의 유언을 전했어요. “내가 죽는다고 서러워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오늘 나는 한국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메리와 크리스 선교사님 부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어, 한국에 커다란 사랑의 흔적을 남겼어요.
예수님께서 오신 성탄절이에요. 폐허와 같던 한국 땅에서 어린이를 사랑하며 섬긴 메리와 크리스 선교사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이웃에게 기쁘게 손을 내미는 <큐티프렌즈> 친구들이 되길 소망해요.